본문 바로가기
내가 좋아하는 시

가을에는

by 이문복 2016. 10. 19.

 

가을에는

 

최영미

 

 

 

내가 그를 사랑한 것도 아닌데

 

미칠 듯 그리워질 때가 있다

 

 

바람의 손으로 가지런히 풀어 놓은,

 

뭉게구름도 아니다

 

양떼구름도 새털구름도 아니다

 

 

아무 모양도 만들지 못하고

 

이리저리 찢어지는 구름 보노라면

 

내가 그를 그리워한 것도 아닌데

 

그가 내 속에 들어온다

 

 

 

뭉게뭉게 피어나 양떼처럼 모여

 

새털처럼 가지런히 접히진 않더라도

 

유리창에 우연히 편집된 가을 하늘처럼

 

한 남자의 전부가 가슴에 뭉클 박힐 때가 있다

 

 

가을에는,

 

오늘처럼 곱고 투명한 가을에는

 

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으로 문턱을 넘어와

 

엉금엉금, 그가 내 곁에 앉는다

 

 

 

그럴때면 그만 허락하고 싶다

 

 

사랑이 아니라도,

 

그 곁에 키를 낮춰 눕고 싶다

'내가 좋아하는 시' 카테고리의 다른 글

한번 지나가버린것....  (0) 2017.09.06
얼마나 남았을까  (0) 2017.08.30
지나가고 떠나가고  (0) 2016.08.20
구부러진길  (0) 2016.06.06
이상한 소식  (0) 2016.04.24